기로에 선 와인의 메카, 보르도

김지호 | 입력 : 2011/05/06 [23:10]
유럽에서 와인이 빠진 고급식탁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와인은 유럽인들에게 풍요를 상징하는 삶과 문화의 한 부분이 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로마가 유럽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세웠던 포도농장인 빈야드(vinyard)는 오랜 세월을 거쳐 거대산업으로 성장해왔으나, 현재는 복잡해진 경쟁구도와 환경의 변화로 인해 기회와 위기의 갈림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  빈야드(vinyard)의 포도밭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와인의 세계 12대 주산지 중에서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독일, 포르투갈 등 5개가 포함된 서유럽은 현재 전세계 와인의 70%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57개 지역 116,000헥타르의 빈야드들에서 연간 8억5천만병(레드와인 89%)을 생산하는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 지역은 와인의 메카로 불린다. 보르도와인의 역사는 로마가 보르도의 쌩때밀리온(st. émilion)을 정복한 후 병사들을 위해 빈야드를 조성했던 ad 48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아오르는 보르도의 열기

올해 보르도는 격년마다 개최되는 16번째이자 창설 30주년인 국제와인박람회 vinexpo 준비에 여념이 없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prowein (3/27-29), 이태리 베로나의 vinitaly (4/7-11) 및 영국의 london international wine fair(5/17-19)와 더불어 유럽의 4대 와인박람회로 꼽히는 vinexpo 2011(6/19-23)에는 40개국에서 2,400 업체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2009년에 이어 양호했던 2010년의 날씨로 보르도의 2010 빈티지(vintage)가 최적의 제품일 것으로 기대됨에 따라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달 와인제조농장인 7개 샤또(chateaux)의 초청으로 열렸던 시음회(barrel test)에 68개국에서 19,000명이 방문했다고 밝히면서, “80%이상의 와인을 20개국 이하에 공급하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보면 높은 관심도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보르도 와인농장연합의 교역담당이사는 분석했다. 특히 근래 들어 보르도와인의 최대 수입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홍콩의 구매무드로 인해 vinexpo에서의 거래가격은, 달러약세와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가격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불에 올린 냄비가 된 보르도의 열기는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으나 동시에 위기도 서서히 잉태되고 있다. 와인거래의 특성상 계약 후 2년 후에나 제품을 받는 거래에 익숙하지 않는 중국과 홍콩의 수입상들이 변동이 심한 시황에서도 꾸준한 구매를 해 줄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선호하는 제품들은 많이 알려진 20개 미만의 톱 브랜드에 한정되어 있고, 그러한 추세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거래선이 홀대 받고 있다고 여기는 미국과 유럽의 수입상들이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탈보르도를 시도할 우려도 있다. 

돌아 온 다크호스 맬벡와인

실제로 영국의 와인제조 업체인 챠펠 다운(chapel down)은 아르헨티나의 멘도사(mendoza) 빈야드에서 재배한 맬벡(malbec)포도를 영국으로 들여와 분쇄 발효하여 vintage 2011 malbec 와인을 제조하여 malbec world day 2012에 출품할 예정이다. 보르도가 원산지인 맬벡은 떫은 맛의 탄닌(tannin)이 강한 검청색 포도로서 즙이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내면서 레드와인의 검붉은색을 만든다. 보르도와인은 malbec을 비롯한 cabernet sauvignon, cabernet franc, merlot, petit verdot 및 carménère의 6개의 품종에 대해서만 블랜딩을 허용하고 있는데, cabernet sauvignon 70%, cabernet franc 15%, merlot 15%의 블랜딩이 전형적인 최상품의 샤또 제품이고, 통상 ‘보르도 블랜딩’이라고 한다. 맬벡은 역사적으로 보르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던 품종이었으나, 타 품종에 비해 더 많은 햇빛을 필요로 하고 병충해와 서리에 약해 소출이 적어, 근래에는 carménère와 함께 많이 쓰이지 않는다. 현재 보르도의 맬벡은 1956년 강한 서리에 의해 대부분이 죽어 새로 심은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아르헨티나의 농업경제학자 미첼 애미 푸제(michel aimé pouget)가 프랑스에서 가져와 심은 맬백은 적합한 토양을 맞아 크게 번성하여 아르헨티나와인을 대표하는 국가품종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맬벡은 프랑스 멜벡에 비해 송이가 작고 촘촘한데, 이는 프랑스에서는 서리와 병충해로 인해 멸종되었기 때문으로 이해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맬벡은 깊은 색에 강한 플루티향과 부드러운 감촉을 자랑한다. 아르헨티나는 미첼이 처음으로 식재한 4월 17일을 malbec world day로 정하고, 지난달 최초로 뉴욕, 영국, 토론토에서 맬벡와인을 홍보하는 행사를 가졌다. 로마시대로부터 중세를 거치면서 가치를 인정을 받아 왔던 맬백와인이 최근 재조명되면서 와인 애호가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엇갈리는 명암

아필리에숑 꼰트롤레

 rhone 와인
기후의 변화도 유럽의 와인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최적의 경작조건을 갖춘 지역이 상대적으로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최적지가 약 200km 정도 북상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곡식들과는 달리 와인용 포도는 적은 온도의 변화에도 성장률과 품질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언제까지 얼마큼일지를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와인산업이 봉착한 딜레마인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명성이 있는 와인, 치즈등 특별한 농축산물에 대해서는 ‘어필리에숑 오리진 꼰트롤레 (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라는 규정에 따라 생산지역과 품종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맞추기 위해 빈야드의 위치나 품종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프랑스의 와인제조업자들은 이러한 규정이 현실에 맞게 완화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잉글랜드의 빈야드들은 온난화에 따른 수혜를 누리고 있다. 영국 남부지역이 샴페인과 같은 스파클링 와인용 포도 재배의 최적지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저명한 와인평론가 휴 죤슨은 “잉글랜드의 와인제조업자들은 그들이 갈망했던 잘 성숙한 과일을 얻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영국 남부의 땅을 사들이는 일이 될 것이다”고 논평했다. 언젠가는 잉글랜드산 정통 보르도와인을 맛볼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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