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질대로 구겨진 재영 한인사회 체면

한심함을 넘어선 진훍탕 싸움
박필립 | 입력 : 2008/01/15 [09:40]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를 들었을 때 항우(項羽)는 이제 막판에 다다랐음을 알았다.

8백명의 군사로 적의 포위망을 뚫었지만 남은 부하는 28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나라 군사는 계속 항우를 추격했고 달아나던 항우가 뒤따른던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동안 70여회의 싸움에서 한번도 패해본 일이 없는데 지금 이 같은 곤경에 처한 건 하늘이 나를 망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이제 그 증거를 보여주지."

말을 마치자마자 항우는 적진에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베어버리니 그의 부하들은 모두 감탄하여 땅에 엎드렸다. 다시 도망가던 항우는 오강(烏江)에 닿았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배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가 항우를 보자 이렇게 말했다.

"강동 땅이 비록 좁다고는 하지만 사방이 천리나 되고 인구는 수십만입니다. 족히 왕업을 이룰 만한 곳이니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그러자 항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늘이 나를 버렸는데 강은 건너 무엇 하랴. 8년 전 나는 강동의 젊은이 8천을 이끌고 이 강을 건넜다. 그러나 지금은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니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추대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有何面目見之乎). 그들이 아무 말 않더라도 내 어찌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는가"

떼지어 쫓는 적병 수백 명을 목 벤 항우는 스스로 칼로 목을 찔렀다. -출전 '史記' 項羽本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장국영이 우희로 분장하여 열연한 영화가 바로 이 대목을 묘사한 패왕별희 (覇王別姬: farewell my concubine, 1993)이다.

초의 패왕(覇王) 항우(項羽)앞에서 마지막 이별의 춤을 보여주던 우미인(虞美人)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항우와의 절개를 지킨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항우가 고향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만 굳이 사족처럼 들여 쓰는 이유는 해외 생활에서 참 면목없는 경우를 목격하는 경우가 허다한 까닭이다.
등 기댈 바람벽조차 없는 해외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날마다 육박전을 벌여야 하는 삶의 현장에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남는 것이라곤 씁쓸한 상처뿐이다.
이 바닥에서 ‘상처받지 않은 城’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축복을 받아도 곱빼기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상처가 있다 하여 그 상처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을 성 싶다. 훈장은 아니겠지만 삶이라는 전장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로는 내가 상처를 줄 수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상처를 일부러 부풀려 자해할 필요도 없겠으나 때로는 상처를 미화하는 경우는 얄미움 수준을 넘어서기도 한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그 체면 때문이다. 체면치레에 너무 과해도 문제겠으나 전혀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 몰상식 자로 불려져도 할 말이 없다.
몰상식 자는 현대판 不可觸賤民으로 취급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몰상식함이란 소리를 듣기에 합당한 소행들이 되풀이되고 그 행위자들이 전혀 面目없어 하지 않는 것 보면 이 사회가 관용이 넘치는 사회로 비쳐진다거나 아니면 그들과 한 패로 불러진다 해서 억울해할 것은 없을 성 싶다.
다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상대방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을 삼가는 것이 해외생활의 예의가 될 것이다.

상식이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진 않더라도 뉴몰든 파운틴 물 만큼이라도 흐른다면 면목이 전혀 없지도 안을 듯하다.
 
< 이 사설은 오래전 동포지인 한인신문에 올린 글이었으나 다시 불러다 쓰는 것은 작금 현실이 더욱 가관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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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2008/01/20 [10:19] 수정 | 삭제
  • 항우는 미련한 사람이라고만 알았는데... 정말 멋있는 인간이군요
    너무 조은 글입니다 이런글 자주 실어 주세요
    런던타임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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